도심 아파트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 톤 다운된 카키 그레이 배경에 블랙 & 화이트 기하학 패턴이 들어간 러그와 유럽풍 디자인의 옐로 소파가 눈길을 끈다. 낮은 함석 테이블과 곳곳에 놓인 높고 낮은 스툴, 창가 테이블에 쌓여 있는 다양한 책들에서 공간에 대한 편안한 해석이 엿보인다. 그 이국적인 거실 풍경 속에 수줍게 웃는 박서지 이사가 있다.
패션 디자인 공부를 위해 떠난 지난 15년간의 프랑스 생활은 그녀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밀 코드다. 스스로 생활공간을 만들어갈 시기이다 보니 쉽게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나 몰딩과 벽난로, 나무 바닥을 좋아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진 것. 유학생이 번듯한 세트를 맞춰 구입하기도 어려웠던 상황도 지금 그녀가 즐기는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의 밑거름이 됐다.
“짝을 맞춘 세트보다 발품 팔아 모은 예쁜 것들로 스타일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물론 제 감각과 취향이 항상 똑같은 건 아닌데다 물건의 디자인도 제각각이기는 하죠.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모아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박서지 이사는 자신의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 또 반짝이는 새것보다는 오래되고 낡고 편안한 스타일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사연이 없는 물건이 없다.
“거실 테이블용 함석판은 파리 6구 뒷골목에 있는 튀니지 인테리어 소품 숍에서 구입한 거예요. 손으로 직접 두드려 만든 것이라 울퉁불퉁한 손맛이 참 멋스러워요. 서울에 들어올 때 못 가지고 들어오는 바람에 친구에게 부탁해 결국 1년 뒤에 어렵사리 받은 사연이 담겨있죠.”
큰아이가 태어날 때 구입한 이케아 수납장,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잡지 일을 하던 시기에 촬영하다 마음에 들어 구입한 수납장, 1년을 넘게 탐내다 구입해 뿌듯했던 옐로 소파, 프랑스에 갔다가 소파와 컬러 대비가 예쁠 것 같아 구입한 러그까지. 집 안 곳곳의 물건마다 스토리가 녹아 있다.
- 기하학 패턴의 블랙 앤 화이트 러그와 유럽풍의 옐로 소파, 함석판을 이용한 테이블은 한국식 거실에 대한 편견을 깬다. 소파 세트 대신 곳곳에 크고 작은 스툴을 놓아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이채롭다.
(왼쪽) 사촌 언니에게 선물받은 중국풍의 의자가 있는 거실 풍경. 동서양의 이질적인 분위기가 벽과 의자의 컬러로 상쇄된다.
(오른쪽) 테이블 대신 스툴 위에 얹어 사용하는 튀니지산 함석판은 프랑스에서 사용하던 것. 1년을 기다린 뒤에 받은 것으로 현재 거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 거실 소파 옆 좁은 코너의 책상은 그녀가 앉아 인테리어를 연구하는 공간이다. 일본에서 구입한 빈티지 스탠드와 좋아하는 사진 몇 장만으로도 충분히 멋스럽다.
수납과 꾸밈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침실
남편의 발령으로 다시 시작된 한국 생활. 처음에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사용하던 물건들밖에 없었다. 단출하게 시작된 살림살이는 11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져 지금의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다.
박서지 이사가 생각하는 좋은 인테리어란 보기에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실제 생활하기에 아무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사용하는 목적과 원하는 바가 정확하게 녹아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수납이다.
“어떻게 꾸밀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수납이 완벽하게 해결되어야 해요. 그런 다음 그림을 그리듯 공간을 구성해나가죠. 집안을 빈틈 없이 꾸미려고 하면 오히려 지루해져요. 버려진 공간이나 한곳을 눈에 확 띄게 극대화해 예쁘게 꾸미는 것이 더 좋아요.”
프랑스와 한국의 스타일을 적절히 믹스해서 꾸민 그녀의 침실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그녀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화장실 앞으로 한쪽 면에 가벽을 세워 그 안에 드레스 룸을 꾸민 것. 방을 답답하게 만드는 덩치 큰 옷장 대신 곳곳에 지저분하게 늘어놓은 옷을 깔끔하게 해결한 것이다.
침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멋스럽다. 방의 한쪽 벽만 유럽풍 트월 벽지를 사용한 덕분에 깔끔하면서도 확실한 포인트가 된다. 헤드가 없는 낮은 침대를 놓아 한결 편안해 보이는 공간. 여유를 즐기는 침실에서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언제든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책장을 짜 넣었다.
톤 다운된 컬러에 원 포인트로 힘을 준 아이 방
(왼쪽) 미술을 전공하는 큰아이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화려한 골드 컬러로 몰딩된 책상과 벽에 붙은 다양한 사진은 아이 방의 꾸밈 포인트. (오른쪽)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 방에는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유리 보드를 만들어주었다. 대청마루를 상판으로 하고 다리를 짜서 만든 책상이 눈길을 끈다. 흔히 알록달록한 컬러 일색인 아이들 방도 그녀의 집에서는 달랐다. 카키 그레이 톤의 벽지를 바르고 한쪽 벽면에 화이트 컬러의 책장을 짜 넣어 세련된 감각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것. 대신 아이의 특성에 따라 각각 포인트를 줬다.
“올해 대학생이 되는 큰아이 방에는 화려한 몰딩 책상 하나로 확실한 포인트를 줬어요. 목공소에서 책상을 만든 다음 몰딩 그대로 모양을 본떠서 책상에 씌운 거죠. 아이가 미술을 공부해서 앞에 다양한 사진을 붙여놨더니 멋진 공간이 완성됐어요.”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 방에는 책상 옆 벽면에 커다란 유리 보드를 만들어주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데나 그림 그리며 낙서하는 대신 이 보드를 활용한다. 먼지가 많이 나는 걸 걱정해 유리로 만들어주었다고.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쓰고 지워가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아이들 물건 자체가 알록달록한 것들이 많아 잘못하면 산만해 보여요. 그래서 어떤 물건도 자연스럽게 포용할 수 있도록 카키 그레이를 바탕으로 썼어요. 톤 다운된 컬러를 쓰면 밝고 튀는 색을 더해도 한쪽에서 눌러주기 때문에 밸런스가 맞아 세련되게 연출할 수 있어요.”
믹스 앤 매치, 사이즈와 포인트의 문제
(오른쪽) 침실 화장실과 드레스 룸 사이 공간에 꾸민 화장대. 어느 하나 세트로 구입한 것이 없지만 컬러 튼을 비슷하게 맞춰 멋스럽게 연출했다.
주방에 있는 식탁은 그녀의 살림살이 중 가장 막내에 속한다. 전에는 프랑스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260㎝짜리 이케아 주방 상판에 다리만 구입해 조립해서 만들어 썼었다. 크기가 커서 식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차도 마시는 등 가족의 많은 추억이 담겼다. 하지만 큰아이 나이만큼 오래 사용하다 보니 끝이 갈라져 결국 새로 식탁을 구입해야 했다.
“어떤 걸 살까 고민하다 그냥 원하는 크기와 스타일로 식탁을 맞췄어요. 기존의 살림살이에 새로운 것을 들일 때는 컬러나 마감도 눈여겨봐야 하지만 사이즈를 무시하면 안 돼요. 그 물건 하나만 놓이는 게 아니라 기존의 물건이 같이 놓이니까. 한 공간에 함께 있는 물건들의 높낮이와 부피감들을 생각해 선택하는 것이 믹스 앤 매치의 기본이에요.”
그 후에 컬러나 재질을 맞추는 것이 좋다. 옷을 입을 때 벨트나 구두의 색감이나 재질을 맞추는 것처럼 포인트라도 맞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제품 전체는 아니더라도 한 코너나 끝 라인이라도 공통점이 있어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의 그 독특한 맛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저희 집 안의 물건들은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집 안의 물건들이 잘 어우러져 보여요. 베이스 컬러를 카키 그레이, 카키, 블랙, 우드 등 톤 다운된 컬러를 써서 다양한 요소를 아우르면서도 작은 포인트를 쉽게 부각시킬 수 있었어요.”
그녀의 집에서 받았던 이국적인 첫인상은 결코 값비싼 물건의 힘이 아니었다. 삶을 통해 차례로 연을 맺어온 다양한 물건들의 아우라가 공간과 꾸밈에 대한 공식을 깨고, 자신의 생활에 맞춘 해석이 더해지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과였다.
그 근사한 집에 집 꾸미는 여자 박서지가 산다.
- 가장 최근에 장만한 살림살이 식탁. 원하는 크기와 디자인을 위해 맞춘 덕분에 기존의 의자들과도 잘 어울린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